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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3


English  /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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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의 시작과 끝
네덜란드에서 만난 인연과 우연들


김예은
    인생에는 생각지도 못한 우연과 기회들이 찾아온다. 어떤 연구 결과에서는 인생 대부분의 선택이 우연으로 인해 이루어진다고 한다.


    2019년 이맘때쯤, 내 이름을 건 한국화 스튜디오를 시작했다. 한국에서 한국화를 전공한 나는 디자인으로 진로를 변경한 후 석사과정을 위해 네덜란드로 왔다. 꿈은 다부졌지만, 한편으로는 학부 때의 전공으로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하고 있었다. 당시 언어 교환을 하던 친구 데보라가 때마침 내가 한국화를 전공했다는 것을 알고 나에게 레이던 대학교 동아리 학생들에게 워크샵을 해줄 수 있겠냐는 제안을 했다. 그 제안을 계기로 나는 네덜란드에서 한국화 스튜디오를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첫 시작은 생각보다 수월했다. 미술 선생님이신 부모님께 한국화 재료와 자료로 쓸 수 있는 책들을 부탁했고, 수업과 과제가 없을 때 틈틈이 샘플 그림들을 그렸다. 그렇게 시작한 한국화 워크샵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고, 조금만 더 준비하면 꾸준히 수업을 시작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2020년 봄, 나는 한 회사에서 인턴을 하면서 한국화 워크샵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예정보다 빨리 인턴을 그만두게 되었고, 학교 수업 또한 온라인으로 진행이 되자 한국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한국화 수업은 진행하기 어려웠다. 코로나가 잠잠해지고, 다시 네덜란드로 돌아왔지만, 논문 프로젝트를 하느라 가끔 SNS를 통해서 들어오는 한국화 수업과 관련된 문의에도 나에겐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마음 한편에서는 한국화 스튜디오는 잊고 지금 하는 디자인 관련 일을 더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어쩌면 운명이라는 것은 정말 존재하는 것인 걸까?  한국화 수업을 아예 그만둬야 하나 생각했을 때 다시 한국화 스튜디오를 시작할 수 있는 계기가 생겼다. 다니고 있던 요가 학원 선생님께서 자신에게 한국화를 가르쳐달라고 한 것이다. 심지어는 자신의 스튜디오를 저렴하게 빌려줄 테니 여기서 한국화 수업을 열어도 좋다고 했다. 그 제안은 거절할 이유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처음엔 고민이 되었다. 디자인을 공부하기 위해 석사유학까지 왔기에 디자이너로서의 삶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본격적으로 외국인들을 상대로 한국화 수업을 하는 것에 대한 자신도 없었고, 나의 정체성에 혼란도 있었다. 내가 예술가인지, 디자이너인지, 그림을 가르치는 선생님인지, 나를 무슨 일을 하는 사람으로 정의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고민 끝에 다시 한국화 수업을 시작하고 얼마 후, 암스테르담에서 예술가로 활동하시는 켈리 장님께 함께 수업하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같이 온라인 수업을 시작했고, 델프트 수업에 켈리 님을 주기적으로 초대했으며, 암스테르담에서 민화와 수묵화 수업을 각각 맡아서 진행하기로 했다. 그렇게 암스테르담에서도 수업을 시작하게 되었고, 적은 인원이지만 꾸준히 수강하겠다는 수강생들이 생겨나며 우리는 순식간에 성장했다.


    나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은 꾸준히 수업을 진행하게 되면서 점차 잦아들기 시작했다. 지나고 보니 나는 나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꼭 나를 ‘디자이너’, 혹은 ‘미술 선생님’이라고 한 가지로 정의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여러 가지 일을 하는 사람이고, 그중에 한국화를 가르치는 일도 포함된 것이다. 내가 정말 이 일을 계속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암스테르담에서 한 수강생을 가르칠 때였다. 그분은 평소에 취미로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항상 생각은 해왔지만, 실행에 이르지는 못했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 스튜디오의 홍보 글을 보고 이번엔 꼭 해봐야겠다고 결심했고, 결국 큰 용기를 내서 수업에 참여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명상하는 듯이 마음이 편안해지고 새로운 경험을 하게 돼서 너무 좋다는 수강생의 말을 들으면서 어쩌면 이래서 내가 이 일을 해야 하나보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그림을 잘 그리는 법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경험을 제공하는 것, 그리고 그림에 집중한 순간만큼은 복잡한 마음을 사라지게 하고 치유하게 도와주는 것이 내가 해야 하는 역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2021년을 돌아보니 정말 많은 성장이 있었다. 단순히 한국화 스튜디오의 성장이 아닌, 개인적으로도 많은 성장을 이루었다. 한층 더 나 자신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웠다. 많은 우연과 인연들을 만나서 나의 삶을 이루고, 이 모두가 내 삶을 더욱 더 다채롭게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또한, 이 모두가 ‘나’니까 나를 꼭 한 가지로 정의할 필요가 없다. 우연히 일어난 일들을 받아들이고, 또 거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열심히 하다 보면 또 다른 우연과 기회가 찾아올 것이다.


    2022년, 내년에는 또 어떤 우연들이 일어날까, 벌써 궁금하다.








Writer

Yeun Kim︎︎︎
     Yeun Kim is a designer, entrepreneur, and owner of a Korean painting studio based in Delft and Amsterdam. She came to study for a master's in engineering to escape from Korean painting but started a Korean painting studio in 2019 by chance. Running Studio K&Y with artist Kelly Jang to teach Korean folk arts to people, she promotes Korean culture. Besides her Korean painting studio, she recently started a creativity-related startup as a designer and entrepreneur. She has multiple jobs, which means she does various things at the same time.
김예은︎︎︎
    김예은은 델프트와 암스테르담에 거주하는 디자이너이자 사업가, 한국화 스튜디오 운영자이다. 한국화를 벗어나려 공학 석사 유학을 왔으나, 어쩌다 보니 한국화 스튜디오를 시작하게 되었고 현재는 아티스트 kelly Jang과 함께 Studio K&Y를 운영하며 사람들에게 민화를 가르치고 한국문화를 알리고 있다. 한국화 스튜디오 외에 최근 디자이너이자 사업가로 Creativity 관련 스타트업을 시작하였고,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하는 N잡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