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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2


English  /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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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네덜란드에


Shinyoung Kang

영화 “나 홀로 집에(1990)”

    마치 내 몸 어딘가에 심겨 있다가 12월만 되면 온몸에 자동으로 재생되는 것 같은  “나 홀로 집에" 의 케빈과 머라이어 캐리의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 지겨울 법도 하지만, 내가 어느 곳에서 있든 항상 연말이 왔음을 알려주고 연말 분위기를 물씬 채워주는 고마운 작품이다. 코로나가 주는 많은 제약 때문일 수도 있지만, 연말/연초 모임으로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가던 한국에서의 연말과 달리 올해 네덜란드에서 보내는 연말은 다소 조용하다. 주변의 외국인 친구들이 연휴를 부모님 집에서 보내거나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기 때문인지, 네덜란드에서 연말을 맞이할 때면 평소보다 한적해진 주변을 돌아보게 되는 것 같다.


     서머타임도 끝나고 유럽의 밤이 길어질수록 거리의 크리스마스 조명이 어두운 밤을 채운다. 다시 시작된 락다운으로 상점도 닫고, 크리스마스 마켓도 취소돼서 삭막할 줄 알았던 거리는, 상점들의 크리스마스 장식과 트리들로 한껏 연말 분위기를 밝혀준다. 한국은 밤이 워낙 밝아서 그런지, 바쁜 일상 중 갑자기 찾아오는 하얀 눈과 거리에 흘러나오는 노랫소리로 연말이 왔음을 알았던 것 같은데… 햇수로 5년째 맞이하는 네덜란드의 연말은 어느덧 길어진 밤에 하나씩 늘어나는 거리의 조명 장식을 통해서 서서히 연말을 느끼는 것 같다.


    거리의 밤도 길어졌지만, 네덜란드 집의 밤은 더 길고 깊어진다. 한국에 비하면 원래도 어두웠던 집의 조명에 초를 켜놓으면 촛불이 주는 따뜻함에 실내가 밝아지는 느낌이다. (음식 냄새를 없애주는 건 덤) 가끔은 이래서 유럽사람들이 초를 켜기 위해 어두운 조명을 선호하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내게 겨울밤의 초는 낭만적이고, 매력적인 일상의 즐거움이다. 비타민D를 반드시 챙겨 먹어야 할 정도로 기나긴 유럽의 겨울이지만, 가끔 이렇게 집에서 초를 잔뜩 키는 게 좋아서 겨울이 기다려지기도 한다.


    네덜란드에서 맞이한 첫 해와 둘째 해 연말에는 와인을 잔뜩 넣어 조린 유럽식 갈비탕과 연어, 치즈를 얹은 크래커와 글루와인을 괜스레 의무감처럼 차려 먹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한국의 추운 겨울에 따뜻한 골뱅이탕과 소주를 기울이며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이 너무 그립고 허기져서, 괜한 보상심리로 유럽의 연말 상차림을 따라 실컷 해왔던 것 같다. 올해는 또 다른 보상심리로 수육과 김장을 하기로 했고, 1월 1일에는 사골 육수 팩에 떡만 넣어 10분 컷 떡국을 해먹을 예정이다. 한국에서는 항상 크리스마스에 부모님과 같이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먹으며 보냈었는데... 한 달 전에 사전 예약해야 겨우 구할까 말까 하는 한국 호텔 케이크를 사드리고 싶지만, 올해는 까먹지 말고 집 주변 베이커리에서 사드실 수 있는 케이크 기프티콘이라도 보내드려야겠다.


    한국에 있을 때 새해가 되면 늘 새하얀 눈이 덮인 겨울 바다와 산에서 일출을 보곤 했었다. 새 나라의 어린이처럼 누구보다도 먼저 새해 첫날의 아침 해를 맞이하는 게 참으로 부지런하고, 정말 한국인답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동해의 일출을 보겠다고 밤을 새워가며 정동진에 어렵게 도착했던 날을 생각해보면, 일출 자체보다 그때의 내가 그립기도 하다. 가는 날이 장날 이라고 그날은 해가 구름에 가려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는 건 비밀이지만. 반면, 네덜란드의 새해맞이는 온종일 하늘을 빼곡히 수 놓은 불꽃놀이로 시작된다. 비록 작년과 올해는 코로나로 인해 금지되었지만, 12월 31일은 일 년 중 단 하루, 불꽃놀이가 허용되는 날이었다. 그 때문인지 그날만큼은 밤낮 할 것 없이 너도나도 거리에서 신나게 폭죽을 터트리는 것을 보고, 네덜란드 사람들이 퍽 귀엽다고도 생각했다. 그래도 31일에서 1일로 넘어가는 날, 밤새 집 앞과 거리에서 귀가 찢어질 정도로 폭죽이 터지는 걸 듣고 있자 하니, 올해도 잠 들지 못할 네덜란드에서의 12월 31일을 앞둔 지금은 한국 동해에서 모두가 숨죽여 일출을 기다리던 그 순간이 그립기만 하다.


    텅 빈 집에서 홀로 남은 케빈은 도둑들과 뜻하지 않게 특별한(?) 시간을 보내고, 다시 가족과 애틋한 재회를 한다. 마치 케빈처럼 타지에서 보내는 연말 또한 다소 외로울 수는 있지만, 내 곁에 없는 것을 그리워도 해보고 지난날을 회상도 해보면서 나뿐만 아니라 누군가에게도 소중한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올 한해도 모두 수고했다고, 좋든 싫든 힘들었든 재미있었든 가족과 떨어져 타지에서 연말을 보내는 누구에게나 나의 심심한 공감이 전해진다면, 이 또한 더할 나위 없이 뿌듯한 연말이리라!





Writer

Shinyoung Kang︎︎︎    
    Self-proclaimed spatial experience designer and religious believer. Born and raised in Korea, came to the Netherlands at a relatively late age. Enjoys discussing our somewhat frustrating and sympathetic life from different perspecti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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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영︎︎︎
    자칭 공간 경험 디자이너이자 신앙인. 오롯이 한국에서 먹고, 자라고, 치열한 사회도 겪고 다소 느지막이 네덜란드로 건너왔다. 왠지 모를 답답함과 괜스레 공감 가는 상황을 새롭고 다양한 관점에서 얘기 나누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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