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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4


English  /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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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소중한, 나의 한국어를 위하여


전수윤
    미국인 친구들이 수업 시간에 영어로 자유롭게 발표하는 것을 보면서, 가끔 타국에서 ‘모국어’로 공부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지 상상해 본 적이 있다. 프랑스 친구들이 모로코 여행에서 거리낌 없이 현지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을 보면서 ‘외국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부담감 없이 해외여행을 한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지 고찰해 본 적도 있다.


    아, 얼마나 편할까! 단어건, 문법이건,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자유롭게 내뱉을 수 있다는 것은! 상대방의 말을 놓칠까 두려워 온몸의 신경을 곤두세우고 집중해서 듣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내가 바보 같은 말을 한 건 아닌지, 혹은 상대방이 나의 말을 제대로 이해한 건지 걱정하지 않고 마음 편히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에서!


    안타깝게도 나의 모국어인 한국어는 한국 밖에서 그렇게 널리 쓰이지 않는다. 그래도 지금은 한국어의 인지도가 높아졌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아니 지금도 중국어와 한국어가 같은 언어가 아니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한국어는 여전히 전 세계적으로 마이너한 언어라고 할 수 있다.


    반대로 메이저 언어는 상대적으로 많은 인구가 국제적으로 사용하는 언어일 것이다. 예를 들면 UN이 지정한 ‘국제 공용어’인 영어, 프랑스어, 러시아어, 중국어, 스페인어, 아랍어와 같은 언어들. 특히 링구아 프랑카(Lingua Franca: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의사소통하기 위해 공용어로 사용하는 제3의 언어)로 쓰이는 영어의 위상과 효용성은 얼마나 높은가.


    6개의 국제 공용어가 통용되는 세계에서, 나의 단일 모국어는 국제 공용어로 선택되지 못한 ‘한국어’다. 한국에만 있을 때는 몰랐다. 내가 무의식적으로 구사할 수 있는 언어가 오로지 ‘한국어’ 뿐이라는 것은, 한국 밖에서 나의 목소리를 낼 수 없다는 걸 의미한다는 것을. 그리고 나의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곳에서 나는 의미 있는 존재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내가 아무리 유려하게 구사한다고 하더라도, ‘국제 공용어’로 선택되지도 못한 나의 언어로는 세계 사람들에게 나를 이해시킬 수 없고, 이 사실은 나를 사람들과 의사소통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무력하고 무의미한 존재로 전락시켜 버린다. 반대로 태어났을 때부터 ‘선택된 언어’를 모국어로 삼게 된 사람은 너무도 쉽게 세계 속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낸다. 억울하다. 처음부터 반칙처럼 느껴진다. 나의 엄마를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듯, 나의 모국어는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닌데. 어떤 사람은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는 목소리를, 어떤 사람은 죽어라 하고 노력해야 겨우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불평등한 언어의 권력이고, 힘 있는 언어를 가진 사람의 권력이다. 그렇다고 해서 불평만 하고 있을 수는 없기에 우리는 오늘도 ‘국제 공용어’를 배워 세상에 우리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노력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같은 어려움을 겪었던 사람으로서, 더 넓은 세상에서 새로운 언어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려고 노력하는 모든 사람에게 격려와 응원의 말을 보내고 싶다.


    언어는 목소리, 말 그대로 의미를 전달하는 매개체다. 매개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의미, 곧 목소리가 전달하는 내용이다. 그리고 의미 있는 내용은 자신만의 진실한 이야기에서 나온다. 나는 중국도, 일본도 아닌 나라 출신이라는 것, 숨길 수 없는 나의 억양에 대하여. 새로운 언어를 배우려고 고군분투하고, 바디 랭귀지로 의사소통했던 경험, 웃픈 언어적 실수담까지, 당신의 삶의 모든 것이 결국에는 당신이 세상에 전달할 이야기가 될 거라고. 그리고 그 이야기는 어떤 힘 있는 언어보다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할 당신만의 무기가 될 거라고. 그러니 우리 기죽거나 자괴감을 느낄 필요 없다. 모국어가 한국어라는 것은 어떤 ‘국제 공용어’보다 강력한, 우리만의 진실한 이야기 그 자체이니까.



Writer

전수윤
    어렸을 때의 꿈은 모험가였으나 어떻게 모험가가 되는지 몰라 한참을 고민했다. 다양한 나라에서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살다가 현재는 네덜란드에서 문화와 언어, 예술, 다양성에 대한 공부 중이다. 스토리를 수집하는 사람으로 스토리가 있다면 소설, 영화, 음악, 그림, 유적, 게임, 광고까지 가리지 않고 섭렵하는 기벽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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