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2
English / Korean
︎
당신의 자아는 어떤 언어를 사용하나요?
조혜지
고등학교 2학년 담임 선생님께서 언젠가 상담 중 언어적 자아(Language Ego)에 관해 이야기해 주신 적이 있었다. 사람이 어떤 언어를 쓰느냐에 따라서 조금씩 다른 자아를 지닌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어딘가 퍼즐이 맞춰지듯 무릎을 ‘탁’ 치며 공감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 되돌아봐도 어디가 가려웠던 건지 정확히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미묘한 무언가가 시원하게 해소된 느낌이었다. 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 어딘가에 항상 인지하고 있었던, 한국어를 쓸 때와 영어를 쓸 때 조금씩 달라지는 나 자신을 설명하기에는 두 개의 다른 자아가 있다고 이해하는 편이 아주 자연스러웠다.
어렸을 적부터 나름 영어와 한국어 2개 국어를 쓰며 자라온 나는 두 언어를 자연스럽게 바꿔가며 사용했고, 그러함에 불편함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국어는 한국어, 영어는 제2외국어라는 경계는 항상 존재했다. 19살까지 나고 자란 곳도 한국이며 내 생활 대부분은 한국어로 생각하고, 공부하고, 대화했다. 우리는 언어로 생각을 전달하고 이 생각들의 형성 과정에는 경험과 문화가 자리하니 언어를 비단 말과 글뿐이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각종 매체와 학교 수업을 통해 친숙해진 영어였지만, 나의 문화적, 경험적 뿌리는 한국이기에 언어의 미묘한 뉘앙스에는 한국어의 경우에 더 세심하게 반응했다. 예를 들어 모국어인 한국어로는 웬만한 비속어는 그 특유의 강도와 어감 탓에 사용을 기피하고 들을 때에도 기분이 심히 나빠지지만, 제2외국어인 영어의 각종 욕은 뼛속까지 와닿지는 않아 나의 영어 자아는 조금 더 거친 단면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씨x’에는 움찔하지만 ‘Fxxk’은 아무렇지 않은 반쪽짜리 강심장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 거친 단면 속 내 영어 자아는 한국어 자아보다 조금은 의기소침해 있다. 영어로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이 내 의도와는 다르게 전달이 되거나 제대로 전달이 되지 않은 경우를 몇 번 마주한 이후에는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을 꿀꺽 삼켜버릴 때가 생겼다. 정확한 단어를 찾지 못해 돌려 돌려 말하느니 그냥 아예 하지 말자, 의 마음이랄까. 주변의 n개 국어 친구에게 다중 언어 자아에 관해 이야기하니 어딘가에서 읽었다며 내게 해 준 이야기가 있다. 새로운 언어를 배울 때 자신의 모국어에서 가지고 있는 언어 습관을 가지고 오면 더 편해진단다. 한국어 대화의 특성 중 하나인 리액션이 특히 나는 좀 많은 편인데, ‘아 진짜?’, ‘정말?’, ‘오~’ 하는 대화법을 영어를 쓸 때도 습관적으로 하는 나를 발견한다. 나의 (가끔은 예의상으로 하는) ’Oh~?’, ‘Really?’, ‘Ah~’ 하는 감탄사들을 보고는 신나서 이야기를 이어 나가는 외국인 친구들이 여럿 있었다. 생각해보니 내 영어 자아의 의기소침함을 무마하기 위해 나타난 한국어 자아의 한 부분이었나 싶다.
지금은 영어도 한국어도 공식 언어가 아닌 네덜란드에 살면서 겨우겨우 반반 합쳐 1개 국어를 유지하는 중이다. 학교 동기 중에서도 모국어가 영어인 친구는 드물다. 모두가 자신의 제2외국어, 혹은 제3외국어인 영어로 대화하면서 A가 모르는 단어는 B가 알고, 서로서로 문장을 끝맺어주거나 만병통치약 ‘you know’로 텔레파시 대화를 나누며 동질감을 느낀다. 그러다 보니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이 모일 때면 언어는 빠지지 않는 대화 주제이다. ‘체코어 동사 변화’, ‘중국어로 시제 이야기하기(중국어는 동사 대신 부사로 시제를 표현한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이탈리아어로 찰지게 욕하기’ 등 평생 생각해 본 적도 없는 각종 언어에 관한 이야기들로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이야기를 나눈다. 점점 학문적 영어와는 거리가 멀어지면서 대학을 다니며 내 언어 실력이 성장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세계 각국에서 온 친구들과 대화하면서 다양한 언어를 접하며 세상을 보는 시각이 넓어진 것만은 확실하다.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처음 Language Ego에 대한 설명을 듣고 수년이 지난 지금도 내가 가지고 있는 2개의 언어 자아가 어떻게 다른지 명확하게 표현하기가 어렵다. 다만 그 시간만큼 성장한 내가 보고 느끼는 세상이 넓어지고 달라진 만큼, 한 겹 한 겹 쌓여가는 생각들이 ‘나’라는 중심 자아를 단단하게 해 주고 있기를 바랄 뿐이다. 어떤 언어가 되었든 내가 원하는 것은 내 생각을 정확한 말로, 정확한 표현으로 전달하는 것이다. 그렇게 더 깊고 넓은 대화를 하며 세상을 알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진실한 언어를 꼭꼭 씹어 맛깔나게 내 생각을 전달할 수 있기를. 그래서 오늘도 나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말과 글과 언어를 보고, 듣고, 말한다. 그리 머지않은 미래 언젠가는 제3의 언어 자아를 성립할 수 있지 않을까 슬쩍 희망하면서.
지금 되돌아봐도 어디가 가려웠던 건지 정확히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미묘한 무언가가 시원하게 해소된 느낌이었다. 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 어딘가에 항상 인지하고 있었던, 한국어를 쓸 때와 영어를 쓸 때 조금씩 달라지는 나 자신을 설명하기에는 두 개의 다른 자아가 있다고 이해하는 편이 아주 자연스러웠다.
어렸을 적부터 나름 영어와 한국어 2개 국어를 쓰며 자라온 나는 두 언어를 자연스럽게 바꿔가며 사용했고, 그러함에 불편함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국어는 한국어, 영어는 제2외국어라는 경계는 항상 존재했다. 19살까지 나고 자란 곳도 한국이며 내 생활 대부분은 한국어로 생각하고, 공부하고, 대화했다. 우리는 언어로 생각을 전달하고 이 생각들의 형성 과정에는 경험과 문화가 자리하니 언어를 비단 말과 글뿐이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각종 매체와 학교 수업을 통해 친숙해진 영어였지만, 나의 문화적, 경험적 뿌리는 한국이기에 언어의 미묘한 뉘앙스에는 한국어의 경우에 더 세심하게 반응했다. 예를 들어 모국어인 한국어로는 웬만한 비속어는 그 특유의 강도와 어감 탓에 사용을 기피하고 들을 때에도 기분이 심히 나빠지지만, 제2외국어인 영어의 각종 욕은 뼛속까지 와닿지는 않아 나의 영어 자아는 조금 더 거친 단면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씨x’에는 움찔하지만 ‘Fxxk’은 아무렇지 않은 반쪽짜리 강심장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 거친 단면 속 내 영어 자아는 한국어 자아보다 조금은 의기소침해 있다. 영어로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이 내 의도와는 다르게 전달이 되거나 제대로 전달이 되지 않은 경우를 몇 번 마주한 이후에는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을 꿀꺽 삼켜버릴 때가 생겼다. 정확한 단어를 찾지 못해 돌려 돌려 말하느니 그냥 아예 하지 말자, 의 마음이랄까. 주변의 n개 국어 친구에게 다중 언어 자아에 관해 이야기하니 어딘가에서 읽었다며 내게 해 준 이야기가 있다. 새로운 언어를 배울 때 자신의 모국어에서 가지고 있는 언어 습관을 가지고 오면 더 편해진단다. 한국어 대화의 특성 중 하나인 리액션이 특히 나는 좀 많은 편인데, ‘아 진짜?’, ‘정말?’, ‘오~’ 하는 대화법을 영어를 쓸 때도 습관적으로 하는 나를 발견한다. 나의 (가끔은 예의상으로 하는) ’Oh~?’, ‘Really?’, ‘Ah~’ 하는 감탄사들을 보고는 신나서 이야기를 이어 나가는 외국인 친구들이 여럿 있었다. 생각해보니 내 영어 자아의 의기소침함을 무마하기 위해 나타난 한국어 자아의 한 부분이었나 싶다.
지금은 영어도 한국어도 공식 언어가 아닌 네덜란드에 살면서 겨우겨우 반반 합쳐 1개 국어를 유지하는 중이다. 학교 동기 중에서도 모국어가 영어인 친구는 드물다. 모두가 자신의 제2외국어, 혹은 제3외국어인 영어로 대화하면서 A가 모르는 단어는 B가 알고, 서로서로 문장을 끝맺어주거나 만병통치약 ‘you know’로 텔레파시 대화를 나누며 동질감을 느낀다. 그러다 보니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이 모일 때면 언어는 빠지지 않는 대화 주제이다. ‘체코어 동사 변화’, ‘중국어로 시제 이야기하기(중국어는 동사 대신 부사로 시제를 표현한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이탈리아어로 찰지게 욕하기’ 등 평생 생각해 본 적도 없는 각종 언어에 관한 이야기들로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이야기를 나눈다. 점점 학문적 영어와는 거리가 멀어지면서 대학을 다니며 내 언어 실력이 성장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세계 각국에서 온 친구들과 대화하면서 다양한 언어를 접하며 세상을 보는 시각이 넓어진 것만은 확실하다.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처음 Language Ego에 대한 설명을 듣고 수년이 지난 지금도 내가 가지고 있는 2개의 언어 자아가 어떻게 다른지 명확하게 표현하기가 어렵다. 다만 그 시간만큼 성장한 내가 보고 느끼는 세상이 넓어지고 달라진 만큼, 한 겹 한 겹 쌓여가는 생각들이 ‘나’라는 중심 자아를 단단하게 해 주고 있기를 바랄 뿐이다. 어떤 언어가 되었든 내가 원하는 것은 내 생각을 정확한 말로, 정확한 표현으로 전달하는 것이다. 그렇게 더 깊고 넓은 대화를 하며 세상을 알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진실한 언어를 꼭꼭 씹어 맛깔나게 내 생각을 전달할 수 있기를. 그래서 오늘도 나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말과 글과 언어를 보고, 듣고, 말한다. 그리 머지않은 미래 언젠가는 제3의 언어 자아를 성립할 수 있지 않을까 슬쩍 희망하면서.
조혜지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어떻게 나만의 속도로 살아갈 수 있을지 이제 막 궁리하기 시작했다. 넘쳐나는 생각들을 일기에 차곡차곡 담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정성스럽게 담긴 글을 읽는 것을 좋아한다. 스스로는 한량을 꿈꾸지만 끈기 있는 사람들을 존경하며, 암스테르담에서 생물학을 공부하다 현재는 아인트호벤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있다.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어떻게 나만의 속도로 살아갈 수 있을지 이제 막 궁리하기 시작했다. 넘쳐나는 생각들을 일기에 차곡차곡 담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정성스럽게 담긴 글을 읽는 것을 좋아한다. 스스로는 한량을 꿈꾸지만 끈기 있는 사람들을 존경하며, 암스테르담에서 생물학을 공부하다 현재는 아인트호벤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있다.
English / Kore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