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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3


English  /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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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를 ‘잘한다’, ‘가능하다’의 기준은 뭘까?


김종희
    필자는 국내외 대학은 물론 해외의 인터내셔널 스쿨 및 교육기관 등에서 십 수년간 언어를 가르쳐 왔다. 그러다 보니 제자 중에 세 개 또는 그 이상의 언어가 가능한 학생이 종종 눈에 띈다. 세 개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학생은 특히 유럽에 많은데, 이들 대부분은 모국어+영어+제3 언어를 구사하는 경우이다. 가령 네덜란드에 있는 한글학교의 터키인 학생이 학교에서는 수업언어 및 학생들 간의 소통 수단으로 영어를 사용하고, 자신이 선택한 제3 언어인 한국어를 배우는 형태가 있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애초에 두 개의 모국어를 가지는 학생도 있다. 독일인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를 둔 한 학생은 두 개의 모국어 외에도 학교에서는 영어, 제4 언어로는 한국어를 선택하였다. 독일어, 프랑스어와 영어를 구사하는 데에 약간의 능력 차는 있을 수 있으나, 세 언어 모두 그 언어권 국가에서 일반적으로 생활하고 수업을 받는 데에 전혀 문제없는 정도로 구사한다.


    그러나 항상 의문이 드는 것은 한국인의 기준에서 이중언어화자(Bilingual), 삼중언어 화자(Trilingual), 더 나아가 다언어 화자(Multilingual or Polyglot)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하는 점이다. 이들의 사전적인 정의는 다음과 같다.

  •  이중언어화자: 2개 언어가 가능한 사람

  •  삼중언어 화자: 3개 언어가 가능한 사람

  •  다언어 화자: 여러 개의 언어가 가능한 사람 (이중 및 삼중언어 화자를 포함)

    하지만 사전적인 정의임에도 ‘가능하다’라는 표현은 많은 오해를 자아낸다. 뚜렷하게 눈에 보이는 객관적이거나 정량적인 지표 없이 단순히 ‘가능하다’, ‘할 수 있다’, ‘잘한다’와 같은 표현들은 너무나 주관적이고 개인적이기 때문이다.


    현재 유럽 전역에서는 CEFR(The Common European Framework of Reference for Language)이 널리 사용되고 있다. 모든 언어를 A1~C2의 6단계로 크게 나누어 일상생활은 물론 취업 및 진학 등 다양한 상황에서 활용하고 있다. A1은 이제 막 해당 언어를 배우기 시작한 수준으로 C2에 가까워질수록 원어민의 구사 능력에 근접한 수준을 가리키며, 보통 유럽에서 어떤 언어를 ‘잘한다’라고 할 때 C1이나 C2와 같은 구체적인 척도가 기준이 된다. 가령 “저는 C1 정도예요”라고 말한다거나, 또는 해당 척도를 말하지 않더라도 스스로 ‘잘한다’라고 인정하였으면 자신의 머릿속에 그 기준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반면 한국의 경우, 언어별 기준은 있지만 공통된 것이 아니기에 자신이 잘 모르는 언어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자기가 구사할 수 있는 언어의 기준으로 치환해 생각하거나, 초급, 중급, 고급과 같은 무지막지한 방법으로 언어의 수준을 삼등분하기도 한다.


    한국의 어린 자녀를 둔 학부모 중 자녀가 외국어에 대한 거부감이 없고 외국에서 온 친구들과 스스럼없이 말을 잘한다며 자신의 아이가 바이링구얼이라고 자랑하거나 주변의 인정을 원하는 경우가 있었다. 실제 필자는 한국 대학에 재직 중 방송사 PD로부터 몇 개 언어를 구사하는 언어 천재가 있으니 실력을 검증해 달라는 부탁에 간단한 테스트를 한 적이 있었다. 당시 나뿐만 아니라 타 언어 교수들도 그 학생의 실력에 실망한 것은 물론, 해당 PD는 방송의 방향을 급선회해야 했다. 학생들 또한 “누구는 영어를 한국어보다 잘해요”, “쟤네 아빠는 무역회사 하시는데 세 개 언어를 할 줄 알아요” 등 언어 좀 잘한다고 추켜세우는 게 한도 끝도 없다. 직장 상사가 갓 들어온 유학파 직원을 “우리 누구누구는 영어가 거의 네이티브 수준이야…허허허.”하며 칭찬하기도 한다. 이 모두가 모호한 기준에서 비롯된 오해일 것이다. 물론 개중에는 실제 그 정도 수준에 도달한 예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외국인과의 교류가 일상인 유럽인과 아직은 ‘민족’이라는 울타리가 조금은 더 편한 한국인에게 외국어 능력을 판단하는 기준의 차이는 어찌 보면 당연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하루가 다르게 가까워지고 있는 지구촌의 상황을 고려한다면, 이 모든 애매하고 불확실한 언어 수준에 대한 평가를 재고하고, 누구나 알 수 있는 객관적이고 명시적인 표현으로 우리 일상의 언어를 바꾸어 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최근 들어 한국에 있는 몇몇 외국어 특성화 대학에서 CEFR을 준용한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부분은 높이 평가하는 바이지만, 정부가 특정 외국어 일변도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수많은 외국어를 아우르는 공통된 기준 마련은 요원할 것이다.




Writer

김종희
    부산외국어대학교, 태국 국립 마하사라캄 대학교, 푸켓 카종키엣 인터내셔널스쿨에서 십여 년 이상 교편을 잡았으며, 현재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한국어와 일본어 전문 교육기관을 운영하고 있다. 대학에서 통·번역사를 양성하는 일을 오랫동안 해왔으며 동시 및 순차를 포함한 다양한 종류의 통역 교육과 CAT 및 후 편집 분야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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